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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느헤미야

(느헤미야 강해 3) 느헤미야 2장 1-6절 내일을 잉태하라

by 설교 나눔 2022.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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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2장 1-6절   내일을 잉태하라

 

오늘의 본문에서 느헤미야는 조국과 조국의 백성들에게 안정되고 가치있는 내일을 선물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는 그 일을 우선 기도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기도를 시작했다고 해서 당장 그의 조국에 어떤 변화가 나타났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포기하지 않은 유일한 이유는 내일을 잉태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러면 그가 내일을 잉태하기 위해 기도하며 해야만 했었던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1. 기도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희망을 품고 기다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희망을 버린다면 더 이상 기도하지 않을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조국을 위해 기도를 시작하여 마침내 조국에 돌아가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는 프로젝트에 착수하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경과된지 아십니까?

적어도 4개월 이상의 시간이었습니다.

 

2:1아닥사스다 왕 이십년 니산월에--”

이때가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 재건 프로젝트가 시작된 달이었습니다.

니산월은 4월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이 일에 대한 기도를 시작한 것은 언제였습니까?

1:1에 보면 “--아닥사스다왕 제이십년 기슬르 월에---”기슬르월은 11월에서 12월경입니다.

그러니까 적어도 4개월 이상 경과한 것입니다.

 

그는 그동안 충분히 기도한 것입니다. 충분히 기도하며 충분히 기다린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인가부터 우리 한국인들은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움직이는 엘리베이터안에 들어가 자동으로 닫히는 그 시간을 인내하지 못하고 단추를 눌러 닫아야 하는 대표적인 민족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기도란 시간과 함께 열매를 맺는 하나님과의 교통의 장인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누가18:1이하에서 주께서는 기도를 가르치면서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억울한 일을 당한 과부가 불의한 재판관을 찾아가 지속적으로 탄원하는 비유로 가르치셨습니다.

이 비유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기도하고 믿음으로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중요한 이유의 하나는 기도의 응답 그 자체보다 기도하면서 우리가 하나님과 맺는 인격적 관계를 더 중시하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2.기도하며 계획해야 합니다.

느헤미야가 기도하며 기다리면서 또 한가지 한일이 있었다면 내일을 계획하는 일이었습니다.

 

6절 마지막 부분에 보면 그가 기한을 정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 재건 프로젝트가 소요될 시간을 산출해 놓고 있었던 것입니다.

7절이하에는 그가 왕에게 이 프로젝트의 완수를 위한 구체적인 도움의 리스트를 열거합니다.

이 리스트를 보면 우리는 느헤미야가 이 기간동안 얼마나 치밀하게 계획을 준비했는가를 알수 있습니다.

그는 우선 왕이 주변 총독들에게 조서를 내림으로 그가 예루살렘까지 도착하는 일에 장애가 없게 명령서를

하달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8절에는 왕의 삼림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려 성과 가옥 건축에 필요한 충분한 재목들을 공급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는 미리 치밀하게 계획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하면 되었지 계획이 무슨 필요하겠느냐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런 분들의 입장을 극단적인 신비주의적 접근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또 한 종류의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계획하면 되었지 기도가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런 사고를 역시 극단적인 이성주의적이고 인본주의적 접근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의 사람들은 기도하며 계획합니다.

기도에서 비전과 계획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된 내일을 잉태하고자 하십니까? 엎드려 기도하십시오. 비전을 받으십시오.

그리고 그 주께서 주신 비전에 따라 내일을 계획하십시오. 치밀하게 계획하십시오.

 

3.기도하며 기회를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며 계획한 바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결정적인 때를 찾고 그 때를 붙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회란 지나가면 다시는 붙잡기 어려운 것입니다.

 

2절에 보면 느헤미야의 얼굴에 수색 즉 근심의 표정이 있는 것을 보고 왕이 무슨일이 있느냐고 묻습니다.

드디어 기회가 온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이 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3절의 느헤미야의 대답을 읽어보십시오. “왕께 대답하되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열조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으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색이 없사오리까?”

 

4절에서 왕이 다시 묻습니다. 그러면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그는 다시 묵도합니다.

감사의 기도와 함께 이제 결정적인 기회를 달라는 기도였을 것입니다.

이제 5절을 보십시오. 드디어 그의 요청을 내놓습니다. ‘---나를 유다땅 나의 열조의 묘실이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중건하게 하옵소서그리고 그는 마침내 기도의 응답을 받습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기다린다는 것은 막연한 기다림이 아니라 기회를 찾는 기다림이어야 합니다.

사실 느헤미야는 그 기회를 얻기 위해 기도해 오지 않았습니까?

1:11을 다시 읽어보십시오. “---이 사람(아닥사스다 왕)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까?

이 기도는 구체적으로 기회를 얻기 위한 기도였고 드디어 그 기회가 도래한 것입니다.

 

내일을 잉태하는 자가 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기도하며 기다리십시오. 기도하며 계획하십시오.

그리고 기회가 오거든 이제 몸을 던지십시오. 내일을 위하여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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