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6장 1-3, 15-16절
반대를 넘어서는 성취
우리가 시도하던 일들이 뜻대로 되지 않을때 그 원인은 크게 둘중의 하나 일 것입니다.
하나는 내 잘못일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내 잘못과 상관없는 경우입니다.
내 잘못으로 겪는 어려움의 경우 문제의 해결은 오히려 간단합니다.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돌이키면 됩니다. 적어도 그것이 해결의 시작일수 있습니다.
문제는 내 잘못과 상관없이 우리가 시도하는 일들이 반대에 부딪히는 경우입니다.
기독교적 전망에서 관찰할때 이런 반대는 주로 사단의 방해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단의 존재를 가르쳐 대적 마귀라고 합니다. 마귀는 반대하는 자입니다.
마귀의 반대는 특별히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시도할때 더욱 현저히 작용하게 됩니다.
본문에서 느헤미야가 경험한 반대는 바로 이런 사단 마귀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헤미야는 이런 반대를 넘어서서 예루살렘 성을 쌓아 올리는 역사를 성취할수 있었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성 역사가 오십 이일만에--앨룰월 이십 오일에 끝나매"
느헤미야는 마침내 이 모든 반대를 극복하고 소명을 성취했다는 것입니다.
(16절) "--모든 대적이--낙담하였으니 이는 이역사를 우리 하나님이 이루신것을 앎이니라"
사단의 반대의 전략들과 우리의 준비는 무엇이어야 합니까?
첫째는, 타협의 전략입니다.
그것이 본문1-4절까지의 내용입니다.
여기서 느헤미야의 성역사를 방해하기 위하여 사단은 타협의 전략을 구사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줄곧 조롱과 방해로 일관하던 산발랏과 도비야, 게셈은 이번에는 "우리가 서로 만나 이야기하자"고 타협의 의사를 전달한 것입니다.
2절을 읽어 보십시오."산발랏과 게셈이 내게 보내어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오노 평지 한 촌에서 서로 만나자"
우리 싸우지 말고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타협을 제안한 것입니다.
타협은 우리의 일상에서 좋은 의미로도 혹은 나쁜 의미로도 사용될수 있는 말입니다.
우리가 시도하는 일의 목표가 동일할때 혹은 목표는 달라도 양자 모두에게 선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판단될 때 우리는 타협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전혀 다른 목표를 가진 두 사람, 두 진영 그리고 양자 모두에게 혹은 양자중 한 편에게 명백한 악을 초래할때 타협은 용납될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산발랏, 도비야의 타협안은 궁극적으로 느헤미야를 파괴하고 성 역사를 중단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던 타협안이었습니다. 이것을 느헤미야는 분별하고 있었습니다.
2절의 마지막 부분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습니까?"---실상은 나를 해코자 함이라"
둘째는. 중상의 전략입니다.
다시 말하면 음해의 전략입니다. 그것이 5-9절의 내용입니다.
타협으로 안되자 거짓 소문을 퍼뜨리는 음해를 시도한 것입니다.
6절의 말씀 "네가 그 말과 같이 왕이 되려 하는도다"
무슨 말입니까? 느헤미야가 페르샤 왕에 대한 모반을 시도하고 그가 왕이 되려 한다는 것입니다.
순 거짓말이지요. 이것이 바로 사단의 또 하나의 전략입니다.
하나님의 사람과 하나님의 사역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사단은 자주 음해적 소문(거짓 류머)을 퍼뜨리는 전략을 구사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요한8:44에서 사단을 가르쳐"--저는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라고 말합니다.
8절을 읽어 보십시오. "--너희의 말한바 이런 일은 없는 일이요 네 마음에서 지어낸 것이라"
그러나 더 이상 그 문제로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을 낭비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대신 기도합니다.
모든 진실을 아시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러나 그의 기도는 단순히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기도가 아니라 자기의 사명인 예루살렘 성 건축에 집중할수 있는 힘을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9절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셋째는, 도피의 전략입니다.
마지막으로 산발랏과 도비야는 스마야라는 거짓 선지자를 매수하여 거짓예언을 통해 느헤미야로 성전에 도피하여 숨게 함으로 사역의 현장에서 도피하게 하는 전략을 구사합니다.
그것이 10-14절까지의 내용입니다.
10절 "그 문을 닫자 저들이 반드시 밤에 와서 너를 죽이리라"
여기 나오는 스마야라는 사람은 12-13절에 의하면 뇌물받고 고용된 거짓 선지자였던 것입니다.
그는 느헤미야에게 너를 죽이려 하는 자들이 있으니 성전에 들어가 도피해 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만일 느헤미야가 그렇게 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무엇보다 예루살렘 성 역사는 중단될 것입니다.
그리고 느헤미야는 사역의 현장에서 도피한 비겁자로 소문날 것입니다.
느헤미야의 대응책은 무엇이었습니까? 두가지입니다. 첫째는 분별이고, 둘째는 직면입니다.
1) 모든 종교인의 소리를 믿지 마십시오. 세상에 가장 가짜가 많은 것이 종교의 영역입니다.
왜 인줄 아십니까? "왜 가짜가 많은가? 진짜가 있기 때문입니다"
2) 그는 거짓 선지자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도피가 아닌 직면을 선택합니다.
그는 도피가 문제의 해결이 아닌 것을 알았습니다.
현실이 어렵다고 해서 도피를 선택하지는 마십시오.
현실이 어려울수록 그 현실에 직면해야 합니다.
힘들지만 용기있게 현실에 직면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소명을 성취하는 인생을 사셔야 합니다. 후회없는 마무리를 위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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